신명기

Sunday, December 03, 2006

오경의 문서설이란 무엇인가?



오경의 문서설은 문서 가설로도 불려지는데 오경이 모세 훨씬 후시대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기록된 몇 개의 다른 문서로부터 발췌하여 편찬한 내용을 싣고 있다고 단언한다.
그 네 개의 주요한 문서는 아래와 같다.


J. (주전 850): 야외 문서(Jahwist)는 유다의 남왕조에서 한 익명의 저자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한다. 그는 의인화된 말로 하나님을 묘사했다는 것이다. 이 저자는 윤리적이고 신학적인 반영에 선지자적 관심이 있었으며 하나님의 이름 야웨를 사용했다.
E. (주전 750): 엘로힘 문서는 이스라엘의 북왕조에서 무명의 저자에 의해 기록되었다. 이 저자는 문체에서 보다 객관적이었으며 구체적인 상세함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으며 하나님을 언급하는데 엘로힘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D. (주전 621): 신명기적 문서는 요시야의 개혁 때 대제사장 힐기야의 지도 아래에 작성됐다고 한다. 이 문서는 성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들의 지방 성소들을 포기하도록 유대 백성을 격려하고 있다. 이 문서는 강하게 선지자적 운동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P. (주전 500): 제사자적 문서는 에스겔 시대부터 에스라 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단계로 작성되었다. P 문서는 이스라엘 예배의 기원과 제도를 취급하였다. 이 문서는 특별히 족보, 제사 그리고 의식에 관심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문서설을 주장하는 비평학자들은 J와 E는 한 무명의 편집자에 의해 주전 650년경에 하나의 문서(J E)로 결합되었다고 한다. 또 D는 주전 550년경에 JE에 더해졌으며 P는 주전 430년경에 JED에 첨가되었다고 한다.
문서설의 기원은 불란서의 의학 교수였던 아스트릭(Jean Astruc)이 그의 저서 Conjectures(1753)에서 모세는 두 개의 기록된 문서들 즉 엘로힘과 야웨 문서를 사용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데서 비롯되었다. 그 후에 아이크호른(J. G. Eichorn)이 이 연구를 채택한 첫 전문적인 학자가 되었다. 그는 그의 세 권의 저서(1780-1805)에서 오경의 나머지 책들에 그 분석을 확대시켰다.
테베테(Wihelm de Wette; 1780-1805)는 신명기는 예루살렘에서 모든 예배를 집중시키기 위해 요시야와 힐기야에 의해 경건하게 날조된 것이며 이렇게 하여 D 문서는 그 세 문서 중에 가장 후대에 확립되었다고 하였다. 1853년 휴필드는(Hermann Hupfld) E 문서를 초기와 후기 작품으로 나누었으며 초기의 것은 제사장적 규범(P)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라프(Karl H. Graf)는 1866년 P 문서의 법적 부분은 포로기에 것이었다고 논증하였다.
그러나 문서설을 체계화시킨 대표적인 인물이 있다면 그는 벨하우젠이다(Welhausen).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History of Israel(1878)에서 이스라엘의 종교에 진화론의 원리를 적용하였다. 그는 문서설에다 그의 견해를 위해 그런 그럴듯한 논증을 소개하므로서 벨하우젠가설로 유명하게 되었다. 그 이론은 끊임없이 수정이 되어왔으나 오늘날 비평적 학자들의 주류는 벨하우젠의 고전에서 설정된 기본적 연구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문서설에 의하면 이런 문서들이 마지막으로 확립된 것은 주전 450년으로까지 본다. 이 설에 의하면 시편은 포로 후기의 작품이며 이사야는 두 개나 세 개 혹은 그 이상의 부분으로 되었으며 욥과 잠언도 포로 후기 작품이며 역대기서는 주전 250년 후에 기록된 것으로 아주 믿을 수가 없으며 다니엘은 주전 168년 마카비시대에 기록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이론은 전통적인 오경의 저자와 저작 연대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며 문제점도 한 둘이 아니다.
래니(J. Carl Laney)는 그것을 아래와 같이 다섯 가지로 지적하였다.
첫째로, 문서설의 가장 큰 문제는 성경에 대해 비초자연적 접근을 한다. 이들에 의하면 오경은 하나님의 무호한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유오한 말씀이다. 모세의 저작을 부인함은 물론 기록된 역사적인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성경과 모순이다(딤후 3:16-17, 벧후 2:20-21).
둘째로, 문서설은 순환논법으로 물들어 있다. 그 비평은 오경은 인식 가능한 문학적 요소들을 가지고 있으며 일관된 특징을 가졌다는 결론을 단정한다. 본문을 연구하면서 각 요소는 그것의 특수한 특징에 돌린다. 그리고 나서 성경적 본문에 있는 특징들을 JEDP 문서에 오경의 각 부분을 돌린다. 문학적 요소들을 발견하고 문서들을 분리하는 전 과정이 순환적이다.
셋째로, 문서설은 출애굽기와 신명기의 문학적 통일성을 지적해 주고 있는 15-13세기 봉주 조약에 대해 특별히 연구한 비평주의에서 얻어진 자료들에 의해 서서히 무너져 왔다. 그것은 신명기와 출애굽기의 부분들은 이 책들이 문학적으로 통일되어 있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당대의 조약들에서 설정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는 규칙적인 형식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들은 다른 문학적 문서들에서 빌어 온 작은 조각이나 부분들이 아니다.
넷째로, 설화식 문학은 신에 대한 다양한 명칭들의 기초로 구분되어질 수 있다는 논거는 매우 약하다. 자주 J 문서가 엘리힘을 E 문서가 야웨란 이름을 사용한다.
마지막으로 소위 쌍둥이로 불리는 병렬 구절은 두 개의 다른 문학적 특징이나 전통적 설명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창세기 1-2장의 내용들은 둘이 아니라 하나의 창조를 설명한다. 창세기 1장은 제2장이 남자와 여자의 창조에 초점을 맞춘데 비해 우주의 창조를 일반적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기술은 고대 셈족 문학에서 아주 넓게 시행된 것이었다(2).
따라서 이성적이며 진화론적인 접근 방법의 성경비평은 성경적이지도 않지만 온전한 이성적 비평주의도 되지 못한다.


1.
R. Laird Harris, Leviticus, E. B. C. Vol.2(Grand Rapids:Zondervan, 1990), p.503
2. J. Carl. Laney, Answers to tough Questions(Grand Rapids:Kregel, 1997), pp.5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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